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하르트 바그너 (문단 편집) == 문학가로서의 바그너 == 리하르트 바그너는 작곡가와 이론가로서의 중요성을 넘어서 동시에 극작가, 무대감독, 서정시인, 소설가, 수필가와 가극 대본작가이기도 하다. [[토마스 만]]은 그의 <[[니벨룽의 반지]]> 강연(1937년)에서 “바그너의 시인성을 의심한다는 것은 나에게 언제나 모순되게 생각되었다.”고 토로했다. >“지그프리트에 대한 보탄의 관계, 그의 파괴자에 대한 신의 그 아버지다운 조소적이며 냉연한 애정, 영원한 젊은이를 위해 낡은 권력의 보좌에서 사랑으로 퇴위하는 것보다 시적으로 더 아름답고 더 심오한 것이 있을까? 여기에서 음악가가 발견하는 그 경이에 찬 소리를 그는 시인에게 힘입고 있다.” >---- >― [[토마스 만]] 바그너에 있어서 음악과 문학은 서로 긴밀한 관계 속에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바그너의 경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바그너는 그의 음악을 ‘그것이 중요한 어떤 것을 의미하고 있으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깊이 받아들이도록 온세상을 설득시키기 위해 문학을 필요로 했다. 그는 평생토록 그 ‘[[이념]]’의 주석자였다.” 바그너는 낭만적인 태고의 언어, 즉 오성에 의해 아직 굴절되지 않은 감각적인 감정언어에 의존하여 두운법을 부활시켰다. 언어와의 결합은 문학에서 그것이 가지는 미적 자율성, 독자적인 표현의 가치를 빼앗았지만 <요정 Die Feen>(1833)에서 <파르지팔 Parsifal>(1877~1882)까지의 바그너의 가극들은 그때마다 뛰어난 정신사적 증언으로서 간주된다. 바그너는 문학, 음악, 극예술과 조형미술의 복합적인, 모든 감각들을 포함시키는 규합으로서의, 고대에 이미 발현되어 있었던 총체예술품을 그의 음악극 속에 이루어 놓았다.이것은 한민족의 공동체 체험으로서의 국민종교의 봉헌극 사상과 결합되어 일치의 효과를 목표로 한다. 이점에 있어서 바그너는 낭만적 사고의 최후의 정점이며 성취자이다. 중세의 소재들, 민중문학, 민족신화에 대한 그의 선호가 그 사실을 입증하듯 음악 및 문학 창작 활동에 있어서 바그너는 낭만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는 또한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사상,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와 동시대의 심리학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그너는 신과 신앙을 잃어버린 자연 과학의 시대를 예술 속에서 극복하고자 애썼다. 유도동기(Leitmotiv)를 사용하여 거장다운 기술을 발휘한 그의 음악극들은 감각적 향락을 즐겨하는 세속에의 헌신과 신비-염세적인 구원에의 동경의 대비로 구성되어 있다. 언급된 바처럼, 음악가인 동시에 시인인 바그너의 작품은 따라서 가극 애호가들에게 뿐만 아니라 문학애호가들에게도 각별히 중요하다. 바그너는 음악에서 뿐아니라 그의 가극들의 대본작가로서도 그의 천재성을 증명하였다. 그의 가극 대본들은 그저 대본서들이 아닌 그 이상의 것으로서, 뛰어난 비극작가가 그 속에서 다양한 문학적 전통들을 수용하여 극을 만들어내고, 극중 인물들을 통해 항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가극 계획안들로 간주된다. [[괴테]] 시대가 끝난 이후로는 독일의 극작가나 소설가중 거의 어느 누구도 세계문학 속으로의 입구를 발견치 못했던 반면, 작곡가이며 시인이기도 한 바그너는 20세기를 넘어설 때까지의 다른 어떤 독일작가들의 것과도 그 강도에 있어서 비교될 수 없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특히 19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 속에 그가 행사한 역할은 중세에 대한 베르길리우스의 중요성, 독일의 18세기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중요성에 비교되었다. 그의 작품이 독일의 19세기가 세계문학에 가져 온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여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음악가이며 시인인 바그너는 그러나 순수한 의미의 시인, 또 순수한 의미의 음악가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비범해야 한다는 것이요. 나에게 있어서는 시인과 음악가와의 연합에 엑센트가 주어져야 하오. 음악가만으로서는 나는 별 의미를 갖기 못할 것이요.” 단순히 음악가만으로서는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기악곡의 대가들에 비해 하위에 선다는 생각을 자주 품고 있던 바그너는 음악과 문학의 결합에 있어서는 다른 이들이 그를 결코 능가하지 못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 연합은 ‘가극대본(Libretto)의 음악화(Vertonung)’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극문학 속에서의 ‘음악의 지배’를 또는 더 이상 음악 독자적으로가 아니라 시적 암호들, 상징들로서 이해될 수 있는 유도동기들을 언어와 유사하게 의미론화시킴으로써 음악을 ‘문학화’하는 것을 뜻한다. 바그너에 따르면, 모든 필수적인 표현요소들을 정신에 완전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하모니의 함께 울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하모니를 함께 울리게”하는 것은 음악가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서, “표현되어있지 않은, 그러나 시행들 속에 이미 내재해 있는 하모니를 가진” 시인의 멜로디는 그 드러나지 않은 하모니를 가장 잘 인식할 수 있게 표현해줄 음악가의 도움을 거쳐서 그것의 완전한 표현에 도달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시인의 멜로디의 다만 암시된 의도”를 음악가가 그 멜로디에 하모니를 덧붙이면서 비로소 “실현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음악’극이 “인간성향의 완전한 표현형태”라고 보았다. 또 그는 실제로 이런 식의 음악적․시적 표현수단들의 결합을 통해 독보적인 보다 고차원의 문학을 만들어냈다. 세계무대는 신화적 상상력에 덕입어 연극사에 있어서 시적으로 가장 위대한 것들에 속하는 인물들, 상황들과 정세들을 갖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